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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잉여가 되는 법(글_관남헤잉)


어딜 가도 잉여는 있다. 잘난 애들 모아놔도 그 안에서 더 잘난 애 있고 덜 잘난 애가 있기 마련이다. 서울대에 가도 엘리트가 있고 찐따도 있다. 고등학교 때 다들 날고 기었겠지만 모아놓으면 누군가는 A학점을 받고 누군가는 F학점을 맞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내가 서울대를 '' 갔다. 하물며 찐따들 사이에서도 에이스는 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거다.

바야흐로 2080의 시대란다. 사회 구성원의 20%가 사회의 부 80%를 차지하고 100명을 모아놓으면 20명이 80명을 이끌고 부려 먹는단다. 위대하신 이건희 대 삼성그룹 회장님은 더 스케일 큰 복음을 전하셨다.



천재 한 명이 1000명을 먹여 살린다.



우리는 오늘도 천재 한 분을 위해 열심히 궁짝궁짝 보조와 박자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어떠한가. 오늘 하루도 우리는 천재님을 보좌하며 그 배려로 밥도 먹고 똥도 싸고 힘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잉여의 생활은 결코 나쁘지 않다.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못 나가는 사람이 있고 나도 어떤 집단에서는 에이스가 되고 또 다른 어떤 집단에서는 잉여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잉여가 돼야 한다면, 최소한 멋진 잉여가 되자. 타인을 두드러져 보이게 만들어주는 잉여, 그까이꺼 기꺼이 되어줄 수 있다. 하지만 좆밥 같은 잉여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포인트가 드디어 나온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왕 잉여가 될 거, 간지 나는 잉여가 될 수 있을까. , 이야기해보자. '멋진 잉여가 되는 법'

 


굽신보다는 소신

왔다리 갔다리 하는 순간 추잡한 잉여로 전락하는 순간을 맛본다. 내가 뜻했던 것을 지키고 아니면 말아버리는 소신."아 씨발, 나 그거 안 해." 요 정도 느낌을 줘야 한다. 자발적 낙오라고 할까.

내 얘기를 해본다. 나는 한 언론사 기자다. 일단 언론고시라 불리는 경쟁 체제에서 낙오하지 않았기에 일견 잉여가 아니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언론사 입사의 대가로 소신을 버렸다. 내가 해왔던 생각과 행동, 말들을 고스란히 개나 줘버렸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성향이 맞지 않는 회사였지만 나를 뽑아준 것에 감사하며 굽신굽신 기어들어가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소신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 하루하루가 눈물겹게 좆같다. 일은 힘들고 보람은 없다. 내가 쓰는 기사는 데스킹을 거쳐 딴 기사가 될 때가 있고 회사의 어명으로 생각하지 않은 바를 내 이름을 박아 기사를 내야할 때도 있다. 하지만 더 좆같은 것은 그럼에도 난 조그마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쥐 죽은 듯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 두기에 난 너무 깊숙이 와 있고 이제 그만 둘 용기도 없는 가냘픈 신세다. 이미 나는 멋진 잉여에서 너무 멀어져버린 것 같다.

나도 멋진 잉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원하던 곳에 가서 에이스 노릇을 하며 행복하게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재야에 남아 내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러기에 난 소신이 없었고 겁도 많았다. 멋진 잉여의 자질이 없었달까. 멋진 잉여가 될 깜냥이 없다면 어서 빨리 사상개조를 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도 못한 채 새로운 집단에서 또 하나의 잉여가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낙오해도 곤조는 지키자

'읍아수유'라고 했다. 우는 아이에게 우유를 준다. 닥치고 있으면 그야말로 병신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 그렇지 않은가. 잉여는 주로 낙오에서 온다. 사람들은 낙오를 하면 자신감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소심해진다. 누가 뭐라 해도 '아니, 나는 그저...' 이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면 '상 잉여'가 되는 거다. 곤조를 부려줘야 만만한 잉여가 되지 않는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인 거 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선거 기간 동안만이라도 잉여들이 좀 뭉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기간은 윗분들이 다 쪼는 시기다. 그래 삶이 힘들어 닥치고 지내다가도 이때는 일어서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조아릴 때 압박을 해줘야 ', 그거 제가 예전부터 생각했었던 것이었습죠'하며 콩고물이라도 하나 떨어지지 않은가. 경쟁이 심해지고 경쟁이 심해지고 또 경쟁이 심해지면 잉여들이 많아진다. 경쟁이 심해져만 가는 사회 구조. 우리가 이 구조를 깨기 가장 좋은 때가 선거기간이다.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니까.", 나 정치 포기했어."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곤조를 부려줘야 한다. 잉여의 간지는 곤조에 있다!

 



<북두의 권>관련



 

...간지나는 잉여가 되는 법이란 주제를 괜히 잡았다. 쓰다 보니 어렵다. 하지만 뭔가 후련하다. 내가 어디 가서 한 번 큰 소리 내보겠나. 이 공간에서만은 내가 왕이다. 우리 잉여들, 힘을 내자. 간지 나는 잉여가 되어보자.

 

 

덧붙이는 글

616일 토요일 오후 4, 잉집장으로부터 온 한 통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법과 잉여'라는 주제로 원고를 하나 써서 18일까지 보내주세요.

'아니, ㅆㅂ...'월간' 잉여인데 마감은 일간지랑 똑같은 거지?'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원고를 써야 함을 알았다. 분명 잉집장에게 원고를 보낼 사람이 빵꾸를 냈고 이를 급하게 막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걸 쓰면 나는 평소 타인에게 심어주고 싶은 '관대하고 남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이렇게 21일에 가까스로 원고를 보낸다. 3일이 늦었다. 심으려 해던 좋은 이미지는 온 데 간 데 없고 있던 이미지만 깎아먹었다. 잉집장은 열라 빡치고 마감 빨리 하라고 쌍욕을 하고 싶었을 거다. 참아준 그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나 또한 힘들었다. 계속되는 기사마감과 회식 속에 술에 취해 원고를 마친다. 하루 16시간의 노동 속에서도, 헤롱헤롱한 상태에서 나는 왜 이글을 쓰고 있나 후회가 많았지만 결국 해냈다. 개인적으로 그게 뿌듯하다. 기사 쓰는 것 이외에 이렇게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주제는 법과 잉여였지만 난 법을 모른다. 국가보안법이 안 좋은 법이라는 정도밖에. 법지식이 있었으면 내가 사시를 봤지. 그래서 편법을 썼다. 이것도 법이지 않은가......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써서 부끄러워 딱 한 번 쓴 다음 읽어봤다. 먼 소리인지 잘 모르겠더라... 이것을 얘기되게 만드는 것은 편집장의 역할 아니겠는가. 내 글이 거지같다면 그건 잉집장의 편집 능력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