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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친을 잊는 법(글_봄)

페이스북을 탈퇴한 적이 있다. 내가 작성한 글, 다른 사람의 글에 달았던 댓글이나 반응이 모두 사라졌다. 얼마나 간편하고 깔끔한 방식인가. 웹 상에서 한창 이슈였던 이른바 잊혀질 권리가 반영된 예인데, 어딘지 감상적인 인상을 주는 명칭 덕분에 구남친을 떠올리게 되었다.



스스로 잉여라고 생각해본 적이 드물다. 바랐던 걸 죄다 거두진 못했지만 소소하고 구체적인 꿈은 이뤘다. 자기계발서를 비웃으면서도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통해 자신을 억압하는, <피로사회>의 전형적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특수한 시기에 나는 잉여 오브 잉여가 되곤 한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끝났을 때……



작년 이맘때쯤 나는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있었다. 많이 좋아했다. 그도 나를 아주 좋아했으나 그 시기는 길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걸 참 좋아하는 남자였다. 사랑이 식는 것은 상대에겐 자연스러웠지만 나에겐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랑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하는 거니까, 그의 자연스러움을 지켜주고 싶어서 헤어짐을 말했다. 그렇고 그런, 불운한 커플 이야기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헤어짐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데에는 지문만큼 다양한 각자의 방식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억지로 반동하고 싶지 않았다. 무력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던 나는 최선을 다해 무력해졌다. 끝없이 가라앉았다.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호흡을 골랐다. 깊고 낮게 숨을 쉬며 오래오래 울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일을 하였으니 일상적 업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지만, 엄밀히 말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근무 중에도 화장실에 들어가 울곤 했다(아마 선배들은 내가 방광염이 있는 줄 알았을 거다). 음악을 듣지 않았고, 책이나 영화도 보지 않았으며, 적게 웃었고 조금 먹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적절한 표현이 생각났다. 고행하듯 살았던 것 같다.



생일 하루 전날,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숙소에 틀어박혀 요를 깔았다. 휴대폰을 부여잡고 그에게 생일 축하 문자가 오지 않을까 기다렸다. 오지 않았다. 밤이 되었다. 파도 소리와 어둠이 무서웠다. 무한도전 재방송을 틀어놓고 잤다. 박명수의 개드립을 환청처럼 들으며, 구남친이 나오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깼다. 하루를 굶었더니 배가 고팠다. 아침에 치킨을 시켜 먹었다. 또래오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무 많이. 저녁땐 일어나 전복죽집에 갔다. 귤주를 마셨다. 깜깜한 제주도 밤길을 삼십 분 걸어 숙소로 돌아왔고, 죽은 듯이 잤다. 바다를 본 건 오 분 정도였다. 삼박 사일동안 그렇게 청승을 떨었다. 스물일곱 생일이 지나갔다.



석 달이 흘렀다. 나와 헤어진 다음날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게 그의 방식이겠거니 생각했다. 더는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지 않으니 금세든 오래든, 누군가를 새로 사랑할 것이다. 다시 깊게 숨을 쉬었다. 그의 방식이 부러웠다. 나의 방식은 지루했다. 꽤 오랫동안 그와의 관계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복기했다. 만약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무력감의 시기가 지나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벤저스>가 재밌어도, 날씨가 너무 좋아도 화가 났다. 그가 새 여자친구와 행복할까 봐. 날이 덜 풀린 봄에 삼청동을 코가 빨개지도록 울며 걸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엄연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울지 않고 인정할 때에야 내가 새로운 걸음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죽을 듯이 괴로웠고 그토록 복기에 몰입했음에도 제대로 헤어지고 나서(불분명하다. 페이스북 친구를 끊은 시점이라 생각하고 있다) 연락을 했던 건 딱 한 번이었다.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그의 친구 페이스북을 타고 들어가 손을 잘못 놀려 친구 추가를 했던 적은 있다. 이래서 스마트폰이 싫다) 일요일 저녁 아홉 시경,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은 채였다. 호되게 쏟아 붓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그는 다만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뿐이니까, 얌전히 마음을 전하고 잉여답게 당시 이슈였던 나가수 박미경 로봇설플짤을 추천했다.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면서. ‘절대연락하면 안 된다는 금기 때문에 절대적 경지에 이르렀던 나의 이상한 마음은 그때 이후로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인정한다. 나는 잉여로운 구여친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잊혀질 권리가 있다. ‘우리였던 관계를 끝내고자 했던 그는 페이스북을 탈퇴하는 것처럼 내게 흔적 없이 잊혀지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나 역시 각별히 사랑했던 누군가와 헤어질 때마다 번번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터널 선샤인> 속 주인공처럼 기억이 흐려지기를 원하지만, 영영 불가능할 터다.





이터널 선샤인(2004) 한 장면




그리고 지금. 이별 직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진리라 오랜 고행을 서서히 끝내려 한다. 최근 두 주 들어 세 번의 소개팅을 했다. 두어 개의 소개팅이 더 잡혀 있다. 오늘도 소개팅을 마치고 돌아와 이 글을 마무리한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또 조금 슬프고 불쾌해졌다. 구남친도 괜찮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겠지. 고운 여자를 곁에 두고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듯 바라보겠지.



그는 보지 못할 편지인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의 잊혀질 권리를 지켜줄 수 있었으면 한다. 인용을 덧붙이며 끝을 맺는다.




주어가 없는 익명의 통증…… 아픈 것은 도 아닌, “나면서 당신이고/당신이지만 나인/시간자체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것, 그것을 피 흘리지 않고도 뼈아픈, 사랑의 실감이라고 말하는 것을 용서해요. 이 글을 잊어요.(이광호, 김선재 시집<얼룩의 탄생> 해설 중)

 




이게 나의 마지막 잉존심이다. “이 글을 잊어요.”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