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순으로 전공이 정해지고 학교도 정해진다. 그렇게 직업도 정해진다. 성적이 좋으면 의사가 되고 다음은 검사가 되고 다음은 뭐 모르겠다. 여튼 직업의식이 사라진 데에는 모든 것을 성적순으로 재단해버리는 이 사회의 책임이 크다. 그럼 뭘로 재단해야 하나.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뭐든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그 누군가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대학교 특별전형, 수시전형에서 수능 최저등급제를 적용하고 있었고 내신 비율 또한 적지 않게 적용하고 있었다.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물론 그런 말들과 상관없이 내 학교 성적은 바닥이었고 프로그래밍 성적조차도 시원찮았다. 어느 한 가지도 잘 못했으니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진 수학은 아예 포기했고 암기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과목들과 그나마 자신이 있었던 언어영역, 외국어영역을 주로 공부했다. 운동부 몇 명과 학교에 아예 나오지 않았던 몇 명 사이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내 성적이 몇 달 사이에 얼추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성적으로 바뀌었다.
전국을 빨갛게 물들였던 2002년 월드컵이 지나고 몇 달 후 나는 수능을 치렀다. 수능 전날에는 외가 친척들이 몰려와 내 수능을 축하(?)해주었다. 어른들은 엿과 찹쌀떡을 선물해주며 시험 꼭 잘 봐야 한다고 꼭 좋은 대학가야한다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내게 부탁도 아니고 부담도 아닌 무언가를 엿과 찹쌀떡과 함께 전해주었다. 그리고 간단한 식사와 거대한 술판 그리고 야인시대 단체관람, 또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영화 <타짜>(2006) 중
친척들이 원망스럽지도 않았고 친척들에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나조차도 수능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당오락이니 뭐니 하면서 밤을 새워 공부하는 수험생들 틈에서 수십 년을 놀고먹다가 이제야 몇 자 공부한 내가 수능 대박을 바라는 건 양심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수능시험을 치고 나서 처음으로 담임선생님과 진학 상담이란 것을 해봤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학기 중에도 몇 번 했었다는 그 진학 상담을 나는 그때서야 처음 해봤다. 담임선생님은 그 몇 분 되지도 않는 시간에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내 점수에 맞는 몇 개의 대학을 강권하셨고, 나는 담임선생님의 친절한 권유를 다 듣고 나서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학생기록부에 적혀있는 수상실적만 보셨더라도 그렇게는 말 안 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나 저기나 어차피 지방대인건 매한가지고 어느 과로 진학을 하든 결국 지방대인건 매한가지였으니까. 고를게 뭐가 있겠냐는 마음이셨겠지, 선생님의 마음은. 잘 안다. 이해할 수 있다.
담임선생님과의 진학상담 후에 직접 대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의 작년도 입학 성적을 찾아보고 점수대가 얼추 비슷하다고 생각되면 그 과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다. 커리큘럼이나 졸업 후 진로상황, 교수와 강사 프로필. 그 외에 시시콜콜한 게시판 글들까지 하나하나 다 읽어봤다.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학과 사무실에 전화도 해봤다. 그렇게 진학하고자 하는 곳을 몇 군데 골랐다. 그러던 중에 어느 쪽으로 진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불행하게도 그 고민은 대학 진학 후에도 여전히 하고 있다.
하여튼 난 수능을 치른 후 친구들 운전면허 따고 있을 시간에 밤새도록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의 정보를 찾아봤고 한 달 후에는 담임선생님과 한마디 상의 없이 대학 원서도 냈다. 대학원서 마감일 즈음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원서를 썼다는 소식을 들으신 모양인지 아주 불쾌한 음성으로 어디에 원서를 썼는지 물어보셨다. 가, 나, 다군 모두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썼는지 대답해드리고 나니 선생님이 크게 웃으셨다. 그리고는 너무 상향지원 아니냐,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 물으셨다. 재수해야죠, 라고 답은 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다시 수능을 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어쨌든 좋은 소식 있기를 바란다며 전화를 끊으셨고 두 달 후 까치까치 설날에 나는 원하던 대학의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담임선생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애초에 선택은 내 몫이었고 선생님은 오랜 경험자로써 조언을 해줄 뿐이었다. 난 그 조언을 듣지 않았을 뿐이다.
가끔 사람들 많이 드나드는 게시판에서 대학을 골라달라는 질문을 종종 보게 된다. 대학 이름 쭉 나열해놓고 어떤 대학이 가장 좋은지, 어떤 과가 취업이 잘 되는지를 묻는다. 사실 어떤 대학, 어떤 과에 진학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물론, 대학 간판 그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대학에서 뭘 어떻게 배우느냐 역시 대학 간판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어쩌면 일생에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
부디 너무 쉽게 생각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니.
※ 월간잉여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미 대학 선택 후 다니고 계실 분들이 많겠네요... 너무 늦게 업로드 한 것 같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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