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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 관찰 보고서(글_김불쏠)

<월간잉여> 6월호 주제는 전쟁.  덕후하면 잉여. 결론은 밀덕. 아, 이 얼마나 아름답게 완성되는 공식인가.

 


사실 나는 밀덕이라 자처하긴 힘든 사람이다. 전열화학포에 대해 썰을 풀 수도 없고, 독도함의 만재배수량 따위엔 관심이 없으며, 전진익기의 공력계수 데이터를 보여주면 '까만 건 개미요 하얀 건 종이겠거니' . 그냥 디시 밀갤이나 가끔 눈팅하고 전파말벌[각주:1]과 레오신[각주:2], 소콤 막둘삼 [각주:3]사진이나 보며 하악거리는, 덕후라기엔 조금 모자란 그런 존재다. 그럼에도 이렇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건 밀덕과 일반인의 경계에서 밀덕 쪽에 좀 더 가까운, 애매모호한 자리에 서 있기에 일반인들에게 밀덕들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리고 이해시키기 쉬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디 월간 잉여를 읽고 있는 잉여들만이라도 색안경을 벗을 수 있기를.

 



레오신. 하악하악.




생태

일단 밀덕이란 단어부터 정의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짐작하겠지만 밀리터리+오덕 = 밀덕이다. 군사/무기체계를 좋아하는 덕후로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 전문분야에 따라 전쟁사로 나눠보면 고대 그리스부터 동/서양의 중세, 1/2차 대전을 거쳐 비엣남 (베트남전),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장별로 따지면 지상전/전차,총기류, 해전/함정, 항공전/전투기로. 군의 이미지에 따라선 불곰 (러시아), 천조국 (미국), 영길리 (영국), 덕국 (독일) 등의 각종 빠 ()와 까 (안티팬)로 나눠볼 수 있겠다. 사실 덕후라는 종족이 '남들은 모르는 걸 나는 안다' 는 일종의 우월감과 그걸 나눌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으로 일반인들을 배제하는 게 특징이다. 밀덕이라고 다르진 않아서 일반인에 가까운 뉴비들을 귀찮아하는 편이고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좋아하는 분야별로 헤쳐모여 노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자기가 미는 병기의 우월성을 어필하는 등의) 사안으로 큰 싸움이 나기도 한다. 그 와중에 가끔 개념잃은 Q[각주:4]가 나타나면 공통의 적으로 정의하고 대동단결해서 TOT[각주:5]를 후려갈기고 효력사 판정까지 내려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가끔 환상처럼 여성 밀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들을 만날 확률은 여러분이 로또 1등에 15번 연속 당첨될 확률 정도다. 서바이벌 게이머들 사이에선 좀 확률이 높아지지만 밀덕들의 와이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밀덕으로 분류하기엔 애매하다. 신기루처럼 존재감이 희미한 그들이지만 그녀들은 분명 실재한다. 내가 가르쳤던 여고생 중에도 있었으니까. 김연수, 보고있나?

 

 

서식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밀리터리 커뮤니티라고 한다면 단연 조선일보 기자 유용원이 운영하는 '유용원의 군사세계' 와 디시 밀리터리 계열 갤러리들, '택티컬 포럼' 일 것이다.

 

통칭 '비밀' 혹은 '비딴' 으로 불리는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보면 알겠지만 사이트 주소에 bemil 이 있어서 저렇게 부른다-는 가장 널리 알려진 밀리터리 커뮤니티로, 무기 사진 구경 다니기엔 좋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다만 주의할 것! 이곳의 이슈토론방은 정치성향에 따른 키보드배틀 덕에 극우성향의 일부 잉여만 남아 '방폐장' 취급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디시 밀리터리 계열 갤러리들 (http://gallery.dcinside.com-기갑, 항공전, 해전, 총기갤) 은 멋모르고 하악대는 덕후와 뉴비, 초고수들이 혼재된 정신없는 곳으로 '정보전사' 라 불리는 종북세력과 Q들만 조심하면 밀리터리에 관한 기초상식부터 전문지식까지 넉넉히 쌓기에 좋은 곳이다. 막 발들인 늅늅밀덕이라면 열심히 눈팅하도록.

'택티컬 포럼' (http://tacticalforum.co.kr)은 특수부대나 보병전술에 특화된 곳으로, 업계 실무자(!) 나 서바이벌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실제로 근접전투CQC나 저광도 상황Low-light situation[각주:6] 전투 등 실전관련 강좌도 종종 열리고, 얼마 전 유튜브 '인사이트 피플' 에도 소개된 대한민국 대표 종군기자 태상호 씨도 필진으로 있으니 전장의 생생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그의 칼럼을 읽어보도록 하자.

 

 

정치성향

중도좌파 (이걸 좌파라 불러야할지)와 좀 심각하게 편향된 우파, 괜히 깝치는 종북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비밀 이슈토론방에 들락거리는 밀덕일수록 우파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연령대가 2~30대라면 중도, 나이가 많이 어리거나 디시에 들락거린다면 생각없는 꼬꼬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 있는 축은 빨갱이가 싫고, 젊은 축은 나이 많은 축들이 싸잡아 매도하는게 싫고, 꼬꼬마들은 애니를 보거나 게임을 해보곤 하악대며 들어왔다가 욕만 먹고 상처입은 채 사라진다.정치성향 때문에 싸움도 자주 벌어지며 우파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정신승리라 문제지만. (물론 정신승리의 대명사는 종북세력. 좀비같은 존재들이다.)

 

 

대다수의 오해


1. 전쟁나면 좋아하겠다?

대부분의 밀덕들은 오히려 전쟁을 끔찍이 싫어한다. 어찌됐건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는다. 그게 적이 될지 당신이 될지 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더군다나 밀덕들은 무기를 좋아하기에 무기의 위력과 무서움을 너무 잘 안다. 어떤 주부가 칼에 찔려죽고 싶어할까.

 

2. 군대있을 때 좋았겠네? 말뚝 박지 그랬어.

이등병 시절 훈련 나갈 때, 안개 자욱한 연병장에서 60과 닷지[각주:7]를 향해 뛰어가는 대대원들을 보며 '우와 간지쩌네 슈발' 했던 적은 있다. 훈련 나가서 작전 하는 거랑 군생활은 엄연히 다르다. 밀덕들은 전투상황 하의 긴장감을 즐기는 거지 선임병의 갈굼에 하악대는 마조히스트들은 아니다.

 

3. 사람 죽이는 물건인데 그렇게 좋냐? 변태아니야?

이건 쉽사리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왜 좋아하느냐' , 덕후의 본질에 던지는, 블랙홀마냥 깊이가 무한대인 질문이기 때문에. 분명 변태가 없진 않다. 운전하다 거슬린다고 가스건[각주:8]을 들고 버스기사를 위협해서 뉴스에 나거나 중국을 정복하고 '백마를 타며' 대륙에 자신의 씨를 뿌리겠다던 나광팔[각주:9] 같은 미친놈도 있었으니까. 다른 밀덕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니 일단 나란 사람을 기준으로 대답을 해보겠다. 어려서부터 체형도 가늘고 체력도 약했던 나는 안쓰럽단 주변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 강한 힘을 가진 존재에 대해 동경을 가져오긴 개뿔 아니 어떻게 숫쾡이랑 수호이 30번대 시리즈[각주:10]의 그 듬직하고 섹시한 라인을 보고 하악거리지 않을 수 있냐고. 디자인적으로도 완벽하지 않아? 여기서 탑건 보면서 아잌슈발쩐다!고 외치지 않은 사람있냐고!






Su-27,Su-32, S-37. 하악하악.


 

요약하자면 이거다. 사람이 죽는 걸,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밀덕은 지휘관들의 머리싸움과 전쟁사 속의 숨은 이야기들을, 서바이벌 게이머들은 스치는 BB탄 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팀원들 간의 호흡을, 무기체계를 좋아하는 밀덕들은 그 무기에 집약된 기술의 정점과 그 힘,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만들어졌기에 오히려 아름다워진 디자인을 좋아하는 거지 결코 그 무기가 쓰이길 바라지는 않는다. 밀덕이란 존재는, 틈만나면 카메라 바디를 기변하거나 보배드림에서 람보르기니, 마세라티를 보며 하악대는 주변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전투기의 무장상태에 따른 무게중심 이동과 엔진추력의 차이를 계산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거나, K-2 흑표와 카와이한 일본의 10식 전차가 붙으면 누가 이기나로 싸울만큼 정신나간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일 뿐이다.




※ 월간잉여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1. 전파말벌: 미해군의 함상 전폭기 F-18을 개조한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디시 항전갤에서 부르는 별칭이다. F-18의 이름이 호넷(말벌)인 것에서 유래했다. F-18E/F형 수퍼호넷은 '돼지말벌', 싣고다니는 항모는 '말벌집'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라울러는 실제 현직 미해군항공대 전자전기대대 소속 잉여인 닉네임 '초갼' 이 그의 군생활 에피소드와 항모체험 등을 갤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본문으로]
  2. 레오신: 더러운 덕국 (외계인을 납치해서 기술을 개발하기로 유명하다) 의 3세대 주력전차 레오파드. 드록바 마냥 어떻게 건드릴 수가 없는 존재기에 신으로 추앙받는다. [본문으로]
  3. 소콤 막둘삼: SOCOM mk.23. 미군 특수전 사령부 SOCOM 의 요청으로 덕국의 (이 더러운 놈들!) 총기회사 HK에서 개발된 45구경 자동권총. 국내에선 잠입액션게임 '메탈기어 솔리드'를 통해 일반 덕후들에게 소개됐다. [본문으로]
  4. Q: 중국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에서 유래한 명칭. 디시 등지에서 개념없이 뻘플을 일삼으며 정신승리를 하는 족속들을 일컫는다. 사람취급 안 해주는 게 답인 존재. [본문으로]
  5. TOT사격: Time on target. 포병용어. 동시착탄사격을 말한다. 포 한 문에서 쏜 여러 발의 포탄이 같은 시간, 같은 지역에 떨어지도록 사격하는 방법으로, 포병사격술의 꽃이라 불리운다. 보통은 포 1문당 3발씩 쏜다는데 혼자가 아니라 한 개 포대가 쏘게되면 목표 지역은 쑥대밭이 된다.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선 '다구리' 와 동의어로 쓰인다. [본문으로]
  6. 전장에 조명이 약하거나 거의 없는 경우. 시계가 극도로 나빠지기 때문에 전투가 매우 힘들어진다. 보통은 야시경이나 총기에 장착하는 전술조명 등으로 극복하는 게 맞는데 대한민국 육군에서 그런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본문으로]
  7. 60과 닷지: 여성 잉여들을 위해 쉽게 풀어쓰자면, 대한민국 육군에서 쓰는 큰 트럭과 작은 트럭. 더 큰 트럭은 '두돈반' 이라고 부른다. 짐차에서 병력 이동까지 다채롭게 쓰인다. [본문으로]
  8. 6mm BB 탄을 발사체로 쓰는 서바이벌 게임용 총기 중 권총류. 주로 탄창에 충전하는 가스를 발사동력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듯. 어떤 미친 서바이벌 게이머가 운전 중 버스가 자기 앞으로 끼어들었다고 가스건을 들고 차에서 내려 버스기사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져서 한동안 대다수 선량한 서바이벌 게이머들은 눈물을 머금고 잠수를 타야만 했다. [본문으로]
  9. 디시 밀리터리 계열 갤러리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대표적인 Q. 러시아 '백마'를 타는 것이 소원이며 그를 통해 중국, 러시아 등지에 자신의 씨를 뿌리는 것이 삶의 목표인 이해할 수 없는 존재. 디시 밀갤에는 나광팔, 라팔최고, 신보군이라는 Q3대천황이 존재한다. [본문으로]
  10. 미군 항모들이 말벌집이 되기 이전, 미해군의 함상 전투기였던 F-14 톰캣과 러시아 수호이 개발국에서 만든 SU-32~37로 이어지는 기체들. 톰캣은 영화 '탑건'의 주연기체인 탓도 있지만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인기의 비결이다. 수호이는 필자가 에어쇼에서 비행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반해버렸다. F-15만한 엄청난 덩치가 하늘에서 꽃잎마냥 팔랑거리는 그 자태라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