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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남의 사랑과 전쟁(글_이현탁)

흔히 말하는 '취업 이전(대학 재학 포함)의 잉여 생활'을 자신의 잉여기라고 본다면, 사랑과 전쟁이라는 키워드는 누구에게나 꽤나 공감을 준다. 어른들은 사랑을 많이 해보고 많이 아파봐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에 잉여 시절의 사랑은 너무나도 힘들다.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2 홈페이지. 이 글과 큰 상관은 없다.


 


남자들 입장에서 당장 잉여시절의 사랑은 '전쟁'이다. 20대 초반에는 여자애들의 손바닥 위에서 발버둥 치기 바쁘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평생을 책임지겠다며 '열정 하나로' 들이댄다. 그래도 이때의 사랑은 아름답다.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순수할 때 아니겠나.

 



순수함은 짧고, 상처는 깊다

하지만 순수함은 짧고, 상처는 깊다. 나 자신이 병신처럼 느껴지면서, 남자들은 상처를 받고 복수를 다짐한다. 내게 관심을 갖고 있는 줄 알았던 그녀, 내게 수줍은 미소를 날려주던 그녀가 어느날 한 학번 선배와 사귄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느낌이란. 괜시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첫 날부터 작업을 쳐서 솔로 탈출에 성공한 선배를 내 마음 속의 인간쓰레기 원형(prototype)으로 만들어 버린다. 필자 역시 2학년에 올라갈 때 쯤, 새내기들이 입학한 장소에서 "오티 때부터 작업하는 쓰레기 선배는 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의미 없는 복수에 불과했다.

 

20대 초 잉여남의 트라우마는 선배, 교회오빠 외에도 적지 않다. 갑자기 나타나는 미친 자식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멀쩡한 남의 여자친구와 '신의 계시(방송사 파업에 관한 것이 아니다)'를 받았다며 결혼해야 하겠다는 신학과 오빠는 정말 패지 않는 이상 해답이 없다. 그래서 막상 여친에게 '나냐 신학과 오빠냐'라고 물었는데, 우유부단하다. ㅋㅋㅋ 정말 이건 뭐란 말인가. 물론 대부분의 정상적인 경우에는 교회 오빠가 정리된다. 교회 욕 할 것 없다. 시내 큰 절에서는 숱한 절 오빠들의 러시가 쏟아진다. 성당도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군대 역시 상처의 계기다. 정말 체감 기준 99%의 커플이 깨져나간다. 군대 전역 직전, 쫄다구들이 입대하면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지금 네 여친은 네 절친과 놀고 있겠지." 정말 진리다. 절친이 아니면 나이트, 그도 아니면 옆에 있던 오빠 등 정말 오만 정나미 떨어지는 새끼들이 집적대면 정말 멀쩡한 여자도 정신적 만신창이가 된다. 그 와중에 군바리 잉여남은 계속 여친을 갈궈댄다. 믿음이 안 가느니, 탈영을 하느니, 죽어버리겠느니 등등. 일부는 정말 죽어버리거나 총 들고 뛰쳐나오기도 한다. 어쨌든 안 깨질 수가 없다. 군대 2년 기다려 주는 1% 커플 중 상당수는 남자가 어린년하고 새로 사귀면서 여친을 헌신짝처럼 치운다.

 




가! 가란 말이야!




신자유주의가 잉여남들에게 준 선물

전역 전후 해서 잉여남들의 연애관도 바뀐다. 그 전까지 잉여남들은 여자들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마치 그녀를 정복해 버린 듯이 행동한다. 한 번만 해달라며 징징거리는 것도, 사랑을 확인하자니 어쩌니 하고 저질 철학을 싸질러 대는 것도 그 때 하는 행동들이다. 그게 찌질하다는 깨달음이 생기면 20대 후반이 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때는 취직과 맞물려 여자보다 남자들이 비교적 여유가 있다. 수십 만 명의 동료 잉여남들보다 먼저 취업했다는 이유로 숱한 소개팅이 쏟아지고, 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대던 때를 기억하시나. 그 때의 뇌는 복잡하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면 장가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한 살이라도 더 처먹기 전에 확실히 놀아보자는 생각이 뇌를 양분한다.

그나마 잉여남들에게 다행인 것은, 요즘 여자들이 다들 잘났다는 점이다. 취직도 잘하고 죄다 알파걸 일색이다. 그만큼 '멀쩡한' 남자가 없다. "취업하고, 멀쩡하게 생기고, 성격 안 이상한 놈은 대부분 딴 년이 채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적당히 기본만 해도 '좋다'는 평과 함께 괜찮은 여자들의 호감이 돌아온다. 신자유주의가 잉여남들에게 준 건 이거 하나다. 군 전역 직후, 취업 직후 두 차례 이런 특수(!!)를 누릴 수 있다.

 

정신차리자는 생각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환경이 매치가 되면 바로 장가 직행이다. 요즘엔 최근 5년 전보다 '조혼'이 늘어났다. 이전만 해도 20대 후반 결혼은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은 꽤나 생겨날 정도다. 이유는 단순하다. 무난한 애인도 있는데다,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봐야 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만 바라봐 주는(실제로는 당신의 환경 및 조건에 대한 사전 스크리닝이 끝난 전제에서겠지만) 그 사람 하나면 됐다는 생각에 장가들을 드럽게 많이들 간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정신 못 차리고(아니 안 차리고?) 열심히 나이트 다니는 형님들은 필자의 지인 C1형님을 비롯, 적지 않다. 이들 화려한 형님들 중 상당수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 이제는 결혼 못 하겠다. 소개팅이 어째 30대 여자들만 들어오냐." 7살 연하인 27세 아가씨와 하셔야겠다는데 뭐 31세 후배가 뭘 소개해 준단 말인가. ㅋㅋㅋㅋ

 


사랑에서의 탈()잉여

물론 결혼에 골인한다고 해서, 사랑의 잉여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절찬리 방영되는 '사랑과 전쟁2'의 시청률이 몇%인 줄 아는가. 7.7%. 4.11 총선 당시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5.6%여다. 해묵은 소재에 대충 만들어도 기본 시청률이 나오는 것이다. 결혼한 이후에는 외도, 이혼, 소송 등의 각종 가사사건 키워드들이 호시탐탐 당신을 노리고 있다. 거참, 한 평생 사랑을 고민하는 잉여가 되어야 한다니. 걱정 안 하고 완전한 사랑에 성공하는 '사랑에서의 탈()잉여'는 불가능한 것인가.




PS. 원래는 잉여녀들의 사랑과 전쟁에 대해서도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여자들의 사랑은 승패가 너무 명확한 전쟁 아니냐""이쁜 년들은 끊임없이 승리를 거두고 루저들은 걍 배경이고, 공부 잘하는 애가 이쁜 년 못 당하자나"라던 한 누님의 말씀에 펜을 접어버렸다. 그 누님은 "이쁜 애 하나가 여왕벌처럼 이놈도 따먹고 저놈도 따먹고"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잉여녀들의 사랑과 전쟁은 다음 호에 누가 보론처럼 써 주면 안 될까.


PS2. 내 주변 '사랑 잉여남'의 최고봉으로는 필자의 절친 Joon(가명)을 들 수 있다. 여지껏 여성과 뽀뽀 한 번 변변히 못해 본 Joon군은 지금껏 연애 딱 한 번 해봤다. 31. 늘 여자애들 짝사랑만 하다가 초, , , , 대학원을 보냈다. 공부만 했다고는 하지만, 말주변이 없어서다. 최근에 헤어진 첫 여친은 2개월 만에 시집갔다. 이 충격에 지금껏 ''을 보고 있다. 새벽마다 맥주 캔을 들이키며 짝을 보고 있는 Joon군이 상처를 털어내고 짝을 찾기를 바란다.




※ 월간잉여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