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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 가다(글_JiHoon)


그래. 일단, 솔직히 말하겠다. 서두부터 거짓으로 시작하는 건 마치 생수를 마시는데 알 수 없는 건더기가 넘어간 것 만큼 찝찝한 기분을 들게 하니까. 사실 현충원을 생각하고 집을 나선 건 아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집에서 테이프로 머리카락이나 떼어내면서 혼자 궁상떨기 싫어서 무작정 카메라 들고 선유도 공원으로 갔었다.

따뜻한 햇살, 강가의 시원한 바람. 바람결에 날려 오는 꽃향기. 그리고 소풍 나온 유치원생과 망할 커플,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가족 산책. 책을 읽는 건지 그냥 패션쇼 하러 나온 건지 모르겠는 사람들까지. 이것은 완벽한 봄 그림. ...그래, 아마 알거다. 혼자 돌아다녀본 사람은.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철학자, 시인처럼 인간의 깊은 내면을 바라보는 극한의 사색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생각보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는 것을.  급기야 스마트폰으로 또 다른 장소를 검색한 나는. 바로 근처의 현충원을 찾게 된 것이었다. 순전히, 가까운 곳을 검색한 것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왔던 때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 외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간부급이 참배하는 모습을 TV로 볼 때뿐이었던 현충원. 하지만 아직까지도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정문은 나로 하여금 바싹 긴장하게 만들었다. 정문 한 가운데 제복을 입고 떡하니 서 있는 경찰의 모습. 경건한 마음과 정갈한 복장으로 입장해달라는 안내문을 보고 나는 어느새  켜고 있던 MP3를 끄고, 꺼내려던 카메라를 도로 집어넣었다. 사실 그 누구도 사진을 찍고, 노래를 듣는 걸 못하게 막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 스스로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 현충원은 그런 위압적이고 단단한 겉모습 외에, 입장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순국선열의 ‘기운’이 있었다. 

차도에서 약 50M 쯤 걸어들어왔을까. 도시에서 느껴보기 힘든 조용함이 너무 어색했다. 마치 깊고 깊은 시골길을 걷는 것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깃발만 없었으면 고요 그 자체였다. (지금 와서 보니 나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현충원을 찾는 사람은 드물어서라는 생각도 든다.)


 넓은 잔디밭을 빙~ 둘러 걷다보니 어느새 TV에서 나온 현충문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현충탑이 나온다.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절대 제복을 칼같이 다려입은 헌병 2명과 달랑 나 혼자서 있는 상황이라 그런 게 아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미 안에서는 참배객들이 들어가 있었다. 왠지..방해가 될까 그냥 돌아 나왔다.

그렇게 돌아보면 옆으로 현충지(연못)이 나온다. 그제야 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산책 나온 사람도 있었고, 어울리지 않지만 소풍 나온 가족도 있었다...어김없이 커플도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꺼냈다는 게 함정이지만.





현충지에서 이어지는 산책로, 조경이 정말 아름답게 잘 되어있다. 괜히 데이트하러 오는 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울 따름(사진 JiHoon)



그렇게 산책로를 걷는데 뭔가 시끌시끌하다. 간간히 욕도 들리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학생들이 단체로 왔나보다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보니 말도 못할 정도의 수많은 묘비가 있었다. 학생들은 뭐하고 있었냐고? 전교생이 다 나와 저 수많은 묘비를 닦고 있었다. 추측컨대, 전교생이 나와서 봉사활동을 한 것 같다. 고등학생들이 소풍을 현충원으로 갔을 리는 만무하고..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온 게 아닐까 싶다. 선생님이랑 단체사진 찍는 모습도 보고..끝날 무렵이라 다들 돌아가려 하는데. 하필 나와 방향이 달라 수백명의 고등학생들 틈을 혼자 헤쳐 나가야 했다. 솔직히..좀 쫄았.. 아..아니다..




사진 JiHoon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앞, 뒤를 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묘비들. 쫄아들었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면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 아닌가. 태어나기 전부터 태명으로 불리다가, 뱃속을 나와서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죽어서는 수많은 추억, 업적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키가 바로 이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렇게들 기를 쓰고 바득바득 이름을 남기려 애쓰는 것 아닐까. 왜, 실미도에서도 다들 죽기 전 버스에 이름을 끄적이지 않던가, (개념없이 유적지나 관광지에 이름 쓰는 애들 말고.)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이웃으로 불리었을 한 사람이 오로지 숫자 몇 자리만 남아있는 묘비. '나라를 지켰다'라는 단 하나의 증거만이 남아있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잠시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필연적으로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 생각이 난다. 계급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풀어지고, 전역이 가까워지면서 사회 나갈 생각에 들떠있던 때부터 하지만 북한 도발관련 뉴스가 나오면 '가장 앞서서 싸워야 하는'존재임을 다시 한 번 각인했던 것을 지나, 전역했지만 예비군으로 1년에 며칠은 군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좀 자부심도 생기더라. 비록 지금은 '잉여'를 자처하면서 바람따라~ 물결따라~ 그저 하고싶은 마음대로 행동하고 살고 있지만 한때는 20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나라 지키는데 썼다는 것에.

벤치에서 일어나 현충원을 쭉 한 바퀴 돌아본다. 일반병의 묘를 시작으로 경찰, 장군, 대통령 묘까지. 실제로 2시간 남짓 걷기만 해도 다 볼 수 없을 정도. 정말 무지하게 넓다. 143만 제곱미터. 어린이 대공원의 약 2배.




사진 JiHoon




그렇게 실컷 걷고 다시 밖으로 나선다. 언제 왔는지 넒은 잔디밭에 가족끼리 원반을 던지며 놀고 있다. 그런데 선유도에서 본 가족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나름 나라 지켰다는 자부심이 맘 한구석에서 숨어있다 나와서 그런가.(재수없어도 이해해달라.)

생각지도 않은 현충원 방문. 공짜로 어깨 힘주고 나갈 수 있어서 좋다.



ps.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가보다. 그 자부심은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며칠 전, 예비군 훈련 통지서 받고 짜증부터 나더라. 아놔. 빌려준 군복 받으러 가야겠다.












※ 월간잉여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