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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 전쟁(글&사진 양태훈)

대한민국에서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예전 같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은 끝났지만, 이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크고 작은 전쟁들이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위한 투쟁이나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을 향한 외침,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사진 몽땅 양태훈



전쟁의 현장을 본격적으로 기록하게 된 것은 광우병 촛불집회 때부터였다. 당시 학보사 사진부장으로 있으면서 수업은 다 빼먹고 놀러 다녔지만 시청광장에서의 집회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묵직한 카메라와 렌즈 3개를 항상 들고 빠질 거 같은 어깨로 매일 시청에 갔다. 그 때의 여파인지,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인도를 걷는 것이 어색하고, 도로에서 행진을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사진이라는 기록의 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약자들의 전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계속 사진을 찍고 정리하며 어찌하다보니 그 것을 소재로 다른 분들과 책도 내고 전시회도 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나를 알아봐주는(그러나 나는 그 분들을 알아보지 못한) 분들과 만나기도 한다. 한 집회에서의 일이었다. 물대포를 잔뜩 맞고 온몸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플래시 배터리를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그 날은 물대포에 대비해 큰맘 먹고 산 등산용 우비까지 챙겼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꼴로 배터리와 음료수 한 잔을 사고 계산하는데, 두 여자 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수건을 건네며 수고하신다며 물을 닦아주셨다. 순간 울컥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몇 년간을 기록한 보람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을 드려야 될 분들에게 오히려 내가 힘을 받고 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들의 삶을 위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처절한 정도로,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그 싸움들이. 그 와중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그들에게 믿지 못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민중의 지팡이'이기보다는 '민중의 몽둥이'가 되어버린 현실. 그들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을 잡아내고, 막는다. 




이러한 아스팔트 위 전쟁들은 계속되지만 전쟁을 시작한, 혹은 만들어낸 사람들은 전쟁터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엔가 숨어있는 것일까.
숨어서 술 한 잔 하며 낄낄대며 이러한 전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월간잉여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