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많이 들어서 잉여가 되는 것인지, 잉여라서 이 말을 많이 듣게 되는 것인지.
“그게 밥 먹여 주냐?"
그렇다. 밥 먹여주지 않는다. 유로2012에서 스페인이 우승을 하든, 토레스가 득점왕을 하든 걔들의 발은 내 입과 너무 멀다. 밥은커녕 몇 안 되는 공짜 행복 중 하나인 잠까지 빼앗아간다. 큰 공놀이와 달리 다행히 잠을 뺏지는 않는 작은 공놀이도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끝내기 실책, 블론세이브, 번트실패, 주루사를 밥 먹듯이 하는 팀은 팬들에게 밥 대신 엿을 먹인다, 그것도 매일같이.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과연 밥 나올 구멍이 있을까. 술 한 잔 하고 센치해져서 끼적인 글이 좋아요 세례를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한들, 배지(badge) 단 분들 하는 꼬라지를 도저히 못 봐주겠어서 터뜨린 분통이 아무리 많이 리트윗(RT)된다 한들 클릭 한번이 밥 한 숟가락이 되지는 않는다. (연애? 뽀뽀가 밥 먹여주더냐? 정녕 그렇더냐? 해본 사람들은 알거 아냐? 왜 말을 못하니...)
그럼 밥은 대체 어떡해야 먹을 수 있나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농경지에 볍씨를 뿌려 벼를 기르고 수확·탈곡하는 단계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접 거칠 필요까진 없다. 대신 농부님들이 땀 흘려 수확한 쌀을 살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밥벌이와 돈벌이는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밥도 다 같은 밥이 아니고 돈도 다 같은 돈이 아니다. 번듯한 밥이어야 하고, 번듯한 돈이어야 한다. 번듯한 밥은 번듯한 돈으로 살 수 있고, 번듯한 돈은 번듯한 직장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벌이가 없거나 있어도 번듯하지 않게 돈을 벌고 있는 잉여들을 걱정하는 것이다.
밀레 <이삭줍기>(1857)
“야, 너는 번듯한 돈벌이도 없는 놈이 취업준비 한답시고 빈둥거리면서 축구니 야구니 다 챙겨보고, 페이스북에 하루 종일 들러붙어서 시시덕거리고, 여자친구 손잡고 할 거 다하고, 영화 볼 거 다 보고, 드라마 볼 거 다보고, 연극 볼 거 다보고, 락페스티벌이랍시고 쫓아다니고, 옷이나 신발은 또 꼴에 가려 신어야 되고, 가끔 도서관에라도 가는 날이면 소설 나부랭이나 붙들고 있고, 또, 또 뭘 한다고? 월간 잉여? 그게 밥 먹여 주냐?"
그렇다. 밥 먹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떡하나. 스페인 대 이탈리아 경기가 있는 날엔 말똥말똥한 눈으로 평소 같지 않은 고도의 집중력이 90분간 유지되는걸. 아무리 엿을 먹이는 팀이라도 끝내기 홈런치고 연패를 끊는 날에는 그 팀 없이 못살겠는걸.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에 반가워하는 게 가난한 잉여가 부담 없이 맺을 수 있는 최대치의 인간관계인걸. 잉여도 이력서 3군데쯤 넣고 나면 영화 한편 보고 싶고, 토익응시료 3번 정도 내고 나면 예쁜 옷 하나 사서 입고 싶고, 산과 들을 넘어 면접까지 갔다가 불합격 통지를 받고 나면 남자친구 만나서 눈물도 좀 쏟고 싶고, 그러고 싶지 않겠나. 800만관중이 야구장에 직접 가서 파울볼을 줍고, 1000만 관객이 극장에 가서 돈 내고 영화를 본다는데 왜 집에서 공짜로 야구보다 엿 먹고 다운받아 영화 보는 나를 콕 집어서 그게 밥을 먹여주는지 어쩌는지 따지고 드나. 잉여는 야구도 영화도 보면 안 되는 거냐? 그런 법이 있어?
그런 법은 없고 대한민국헌법 제 10조에 이런 법은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잉집장님, 그런데 월간잉여는 밥 먹여줍디까?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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