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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반값등록금은 거짓말이다.(글_이상구)

잉여들을 잉여이게 만드는 큰 원인 중의 하나가 감당할 수 없도록 높은 등록금 때문이라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도 국민 누구나가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반값 등록금 공약은 취임하자 '마음의 반값'드립을 침으로써 스스로 사기였음을 인정하였다. 사실 연간 11조원이나 되는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연간 5조원 이상이 소요되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나 재원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공약이 제안되었기에 공약 자체가 발상부터 사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2011년 황우여 의원이 한나라당의 원내 대표가 되면서 당 쇄신 작업의 일환으로 다시 한 번 이 공약을 실현하겠다고 주창된 ‘반값 등록금 공약 2탄’도 지난 연말 국회에서 다수당이자 집권당의 예산에도 반영되지 않으며 또 한 번 무산되었다. 수업을 포기하면서 촛불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선 젊은 청춘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분노로 변환되었다.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무산시키고, 박원순 시장을 당선시키는 과정에서 "선거를 통한 승리의 경험"을 채득한 젊은이들은 이번 4.11 총선을 계기로 야권연대에 참여한 정당들과 같이 하는 '반값 등록금 연대'를 결성하고 또 한 번 정당에 기대를 걸게 되었다. 새누리당은 반값 등록금 정책 자체를 아예 공약에서 폐기해 버리고, 현재 시행되는 등록금 융자의 이자율을 1% 낮추는 것으로 이번 선거를 넘어가려고 한다. 민주통합당은 매년 국가재정으로 4.7조원을 투입하여 대학생 등록금 지원과 대학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반값 등록금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투표권을 행사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보자. 국회의 다수당이 바뀌면 이 공약은 실현될 것인가? 그리고 과연 이들 공약이 실현되면 대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될 것인가?
결론은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 마냥 "아니, 아니, 아니올시다"이다.


반값 등록금은 실현 불가능할 것인가?

첫째, 현재까지 나온 정책 방안들은 모두 "No !"이다.

지난해에는 각 당이 2.7조원에서 4.6조원 등의 예산을 투입하여 등록금을 지원한다고 서로 액수 경쟁을 벌이더니, 정작 연말의 예산을 심의할 때는 자신의 지역구 예산은 챙기더라도 등록금 관련 약속은 모두 잊어버리는 합의를 하였다. 등록금 예산을 챙기기 위해 국회에서 예산심의가 지연되고, 국회가 공전되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이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새로 출발을 하면서, 지난해에 국민들에게 굳게 약속하고 대학생 대표들과 간담회 까지 하였던 반값 등록금 공약은 사라져 버렸다. 민주당은 정부의 예산에서 매년 4.7조원을 등록금 관련 재원으로 지출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증세 없이 비과세 감면 축소나 재정 효율화 등으로 이들 예산을 과연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또한, 한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이 예산이 지출되어야 하므로 정책을 10년 동안 시행하는데 47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과연 반값 등록금 예산이 최저 임금 인상에 필요한 예산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소요되는 예산, 또는 아동수당을 지급하는데 소요되는 예산보다 시급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고등학교도 의무 교육이 시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학 등록금을 먼저 국민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국민 정서에 동의가 될까? 통합진보당은 한걸음 더 나아가 대학등록금과 고등교육 관련 문제를 해소키 위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고 매년 약 12조원의 재원을 고등교육에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신규로 12조원을 대학 지원 항목으로 만들어 내는 것 역시 통합진보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과연 이들 예산이 반영되어 등록금이 반값이 되면 대학생들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역시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등록금이 반으로 줄어도, 자신의 노후 소득 보장이나 자녀들의 결혼 비용 마련은 고사하고 매달 가족들의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빠듯한 부모님들이 나머지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대학생 자신이 이 돈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부담은 계속 남게 된다. 물론 소득이 높은 부모를 둔 학생들은 등록금 부담이 반으로 줄면 지금 보다 용돈을 달라고 하기도 편할 것이고, 대학생들의 소비 수준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자취방이나 하숙을 하는데 드는 비용과 생활비는 누가 내어주나? 결국 밤새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처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취직을 위한 스펙 개발에 들어가는 각종 학원비와 어학연수비 까지를 바라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에 대해서조차 여전히 대책이 없다. 어렵게라도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취직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청년실업의 문제는 그대로 남게 된다. 요행히 취직된 이후에도 고용 안정과 비정규직 문제 등도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반값 등록금은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이지 무소불위의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셋째, 근본적으로 지금의 대학등록금의 수준이 합리적인가의 문제와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질이 등록금의 수준에 맞는가에 대한 문제 또한 여전히 남게 된다.

반값 등록금 정책에서는 사립대학들의 각종 비리나 투명성 보장의 문제, 재단 적립금과 학교 발전기금의 활용 등에 대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이 전재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재정으로 반값 등록금에 소요되는 예산을 지원할 수 있을까? 지금 학부모들이 내는 등록금 부담의 반을 정부가 내어주면, 앞으로 등록금 인상은 영원히 동결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반값 등록금이 되면 대학 교육의 질이 올라갈 것에 대한 보장은 누가 할 수 있는가?  


거짓말이 참말이 되게 하는 방법
반값 등록금 공약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과도한 등록금의 문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피상적이고 등록금 부담을 낮추는 정책들의 내용과 방향이 구체성이 떨어지고, 현실성이 낮은 것이 문제이다. 실제로 추진할 정책 의지도 없이 공약을 내 걸은 정당이나 이를 평가하고 검토해야 하는 언론이나 그런 설익은 정책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국민들 모두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현재의 공약대로라면 정당들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고, 국민들은 눈을 빤히 뜨고 있는 상태에서 또 다시 사기를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약이 실현되도록 하고, 실현된 공약이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 시켜 주기 위해서는 반값 등록금 정책의 내용과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재원 확보가 가능하며, 실행도 가능하고,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첫째, 대학 등록금 지원은 국가 재정에서 무상으로 지원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 아래 융자를 받는 것으로 해서 대학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응한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다만, 선택의 여지 없이 대학에 가도록 강요되는 상황을 고려하여 학자금 융자에 소요되는 이자를 국가가 부담하는 것 정도는 타당하다. 물론 완전 무이자는 실질적으로 나중에는 원금 잠식이 되므로 물가 상승율 만큼의 실질 금리를 반영한 무이자 융자로 하고, 소득이 생기면 나누어서 값아 나가도록 한다. 또한 지원 대상을 등록금 뿐 아니라, 대학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등록금과 생활비 까지를 포함하여야 한다. 등록금만 무이자 융자를 해 주는 데는 연간 이자비용이 5,460억원이 소요되며 월 80만원 정도의 생활비 까지 융자를 해 주는데는 매년 1조 2,648억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물론 적은 액수가 아니고 원금 상환이 시작될 때 까지는 이 비용이 누적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대학교육을 선택의 여지없이 누구나 받지 않을 수 없도록 고용구조를 만들어 놓은 책임을 국가가 나누어진다는 측면에서 등록금 원금은 본인의 책임으로 하되 이자 정도를 지원해주는 것은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국고로 직접 지원하는 것 보다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들므로 실제로 정책의 실행이 가능해진다. 또한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위한 학교 기숙사 확대 및 대학생 무상임대 주택과 월세 지원 정책 등의 주거복지정책으로 포괄되어야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이 될 것이다. 물론, 등록금 융자제도와 동시에 각종 노동부분의 개혁과 산업구조 조정,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손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도 당연히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국고 지원은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학에 대해 지원하되,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건부로 추진되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전국에 100개 정도의 혁신 대학을 경쟁방식으로 선정하여 개별 대학마다 집중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곳에는 대학의 공공화를 전제로 교수 숫자의 확보, 도서관 장서 확보, 실험 및 실습 시설 확충 등 실질적인 교육의 질이 개선될 수 있는 항목을 중심으로 지원한다. 이들 지원이 들어가는 만큼 상대적으로 대학은 등록금 의존도가 낮아지므로 학생들이 융자를 받아 납부해야 할 등록금이 매년 실질적으로 인하되도록 할 수 있다.
이미 반값 등록금이 성공한 서울시립대의 경우 가능하였던 이유는 소유가 서울시에 있는 “시립 대학”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와 같이 모든 대학들에 대한 전면적인 국유화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시행하기 어렵더라도, 대학 교육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공공재적인 성격이 높은 분야이므로 정부가 대학에 지원을 하는 것과 연동하여 대학의 이사회에 공익이사를 받도록 하고 대학에 지원되는 액수에 비례하여 공익이사의 비율을 높여 나가는 방법을 통해 궁극적으로 공공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우선 기존의 재단이사회에 공익이사 한명만 들어갈 수 있어도 각종 구조적인 비리를 많이 막을 수 있고, 재단 적립금이 부적절한 수익사업이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지원으로 사용되도록 할 수 있으며 등록금 인상율도 조절 가능하게 될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어려운 처지를 우리 국민들이 이해하고, 다소 부담이 되어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필요한 지출은 하도록 하자.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의 과정이고 전국민이 참여하는 투표의 의미이다. 대학 교육의 수혜자는 대학생 당사자 뿐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들이 대학 교육을 공공화, 공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약을 만드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공약을 실천할 만한 능력과 의지가 있는 정치인들이 국회에 진출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공천을 받은 각 당의 후보자들에게 실질적인 대학교육과 관련된 정책 방안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합리적인 답을 하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자. 대학교육의 질적 개선과 대학의 개편,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학교육의 혁신과 고용 구조의 개편, 그리고 경제 민주화를 연계되는 복지국가 정책을 정당들이 공약으로 내세우게 하자. 당장 대학생이나 학비를 부담해야 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냥 국가가 전액을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막연한 바램만으로는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만큼 고생하고 그 만큼 속아왔으면 이제는 제대로 된 정책을 한번 시도해볼 때가 되었다. 이번 총선을 끝으로 과도한 대학 등록금 문제 하나 만큼은 정리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 월간잉여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잉여논단의 글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