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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한 잉여의 국가를 향한 외침(글 피코테라)

빠르게 가보자. 수많은 잉여들은 엄마돈으로 어영부영 살아가고 있다. 개인 영역에서 잉여행위가 발생하는 것이야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고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엄마말고 이제 누가 뭐라 하겠나. 맑스도 일찍이 고대시대의 발전은 잉여가 있기에 가능하다 했으며, 자본주의 사회 역시 잉여가 있기에 기능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대충 기억한다. 그러다가 마누라에게 혼났지만 뭐. 자, 대충 넘어가자. 그렇다면, 이제, 일단, 여기서, 우리는 잉여가 가장 없어야 할 공간에 대해 사유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 이런 생각 다들 안하니까. 응?

개인의 잉여놀음이야 인생 망테크 타는 거 뭐라 할 말은 없겠으나, 잉여가 발생하면 치명적이고 복구 불가능한 훼손이 발생하는 공간을 파헤쳐서 "님. 그러지 마셈. ㅇㅇ"이라고 말 해주는 지성과 오지랖을 갖추어야 가정이 흥하고 아이가 잘 자라고 나라가 우뚝 설 것만 같다. 얼마나 멋진가? 이게 다 나라걱정이다. 효용의 파괴, 예산의 낭비, 인적자원의 방치... 국가가 이런 짓을 한다면 이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세금낭비는 피비린내 나는 혁명의 주요 원인이요, 고위관직이 하릴없이 띵가띵가 하는 것은 고래부터 온 인민의 분노를 사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뭐가 남아나기에 비효율적인 일에 사람을 들여 돈까지 써가면서 무의미의 의미를 구제하려 애쓰는가. 자! 징벌의 시간이다. 정의의 전장으로! 데마쒸아!

001.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요약하자면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자윤리지원관실'에서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을 염탐했는데, 염탐하라고 대포폰을 청와대에서 지급하고 검찰이 "아 씨발 이거 걸리면 좆됨" 이라고 하면서 사실 숨기려다 뽀록나고 뭐 그런 사건이다. 일단 동네파출소장의 삼거리슈퍼 김씨아주머니 미행도 아닌,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국무총리실에서 주무를 담당하고 검찰이 뒷수습을 해 주는 거대한 삼각동맹의 타겟이 무엇인가. 언론 보도된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KB 한마음이라는 회사의 대표 김종익씨를 캤는데 그 이유가, '쥐박이 동영상'을 올렸기 때문이다.


일단 두 가지 지점이 우리에게 재미있다. 먼저 멀쩡한 회사 대표님이 개인 블로그에 동영상 업로드 잉여짓 한다는 것.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수백년간 우리들이 부르짖은 표현의 자유이다. 만약 그 동영상이 겁나 빡세고 험해서 처벌해야 한다면 명예훼손으로 법정 가면 될 일이다. 두번째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국가의 – 세금 쳐묵쳐묵하는 돼지들의 짓거리인데 청와대, 검찰, 국무총리실이 동원되어서 김종익씨를 사찰 한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사건이니 피디수첩 재방송이라도 보자.) 쥐박이 동영상에 발끈하여 조져버리라는 청와대, 대뇌 전두엽도 활용 못하고 그에 따라 민간인을 사찰한 '공직자윤리지원관실', 대포폰 등 각종 불법적 똥을 온몸으로 닦아주고자 했던 검찰. 결국 김종익씨의 회사는 망하게 됐고, 김종익씨의 인생은 시쳇말로 '탈탈 털려버렸다'.
더 놀라운 점은 얼마 전 이 사건 관련 녹취록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인터넷에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녹취록 치면 내용 나옴)

J: 형... 나 좆됐어. 어떡하지?
C: 아. 씨발... 알았어. 내가 검찰 어떻게 해서 벌금형만 받게 해 줄께. 니 혼자 폭탄 안고 가. 입 딱 닫고 잘 견디고 나오면 현대차나 포스코 한번 만나게 해서 취직시켜줄께. 응? 이번만 어떻게 좀 해 보자.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교훈이란 이런 것이다. 조폭은 칼빵놓고 나오면 범죄자 딱지안고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대학나와 행시붙고 권력단물만 열심히 빨다보면 조폭질을 해도 현대, 포스코 등등 대기업 임원이 될 수 있다는 것. 국가수준의 잉여짓은 이토록 스케일도 크고, 오가는 고유명사들이 참으로 크고 아름답다. 이 얼마나 호방한 라이프인가! 이제 슬슬 잉여질 한 자신이 한심스러울 것이다. 범죄자 앞에서 자기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있다.


002. 박정근 사건
우리들의 유일한 친구 박정근 역시 국가의 잉여짓에 의한 인한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박정근(@seouldecadence)라는 한 사내가 트위터에서 우리민족끼리(@uriminzok)계정을 리트윗하고 북한찬양 트윗을 올렸기 때문에 이것은 국가보안법 7조 1항 5항, 찬양고무죄라는 것이다. 일단 박정근 트윗에 있던 "김정일 카섹스"가 만약 북한에 대한 찬양이라면, "검사님 카섹스"라고 법정에서 말 해주고 싶다. 카섹스는 차를 소유하거나 빌릴 수 있으며 섹스의 상대방 역시 존재해야 하는 고도의 사회적 과정이기에 솔직히 좀 부럽다...쓰다 보니 찬양 맞네? 정근아, 왜 그랬어. 


여튼, 박정근과 그의 친구들이 처음 이 사건을 알게 되었을 때, 모두의 궁금함은 이런 것이었다. "박정근이 그런 뻘트윗을 하는지 어떻게, 누가 알았지?"답은 국가가 세금과 사람을 이런 뻘감시짓에 잉여잉여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다 아닥시키는 통계를 보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자료를 보면 트위터상의 국보법 위반 단속건수가 2008년, 2009년 둘 다 제로였다. 그러다가 2010년 28건, 2011년 9월 30일 까지 156건이다. 그런데 2011년 통계에 음란/선정은 8건, 초상권/명예훼손은 3건, 폭력/잔혹/혐오는 16건, 도박/사행은 1건이다. 남조선이 무슨 간첩의 왕국이냐? 사람들이 섹스나 폭력, 돈 보다 북조선을 향한 열망이 그토록 높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이러하다. 냉전시기도 끝났고 남북의 군사/경제 '대결(말 그대로 비등비등한 이들끼리의 대결)'도 끝났는데 그때 당시 있던 조직들이 아직도 잉여로 남아있는 것이다. 조직있지, 월급도 쳐묵하지, 그러면 뭔가 해야 할 거 아닌가? 그래서 아침밥 먹고 담배 한 대 빤 다음 책상에 앉아 당신과 나처럼 인터넷 뒤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서 조직이 아직 쓸모 있다고, 잉여가 아니라고 입증하기 위하여. 그렇다면 이런 뻘짓을 하면서 실적쌓고 빨간펜 선생님 되서 무고한 사람들 인생에 붉은 줄 죽죽 그어대는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산은 얼마인가? 국정원 예산은 기밀이고, 보안수사대 등의 정치/사상을 다루는(?) 경찰예산은 국회의원이 '열람'만 가능하다고 한다.


인터넷은 잉여력 폭발의 무대,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낚기도 쉬우며 낚이는 것도 쉬운 살아있는 부킹 나이트, 아비규환이다. 국가의 인터넷 개입을 전면 긍정하거나 전면 부정하는 것은 쉬운 논리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각각의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에는 많은, 나보다 우수한 석학들 역시 동의하고 있다. 쪼렙들이 숏소드 들고 고블린이랑 기벌링 잡고 노는데 GM이 +9투핸디드(타격시 구속)검 들고 설친다고 생각 해 보라. 쪼렙들은 렙업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며 그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게 될 것이다. 국가 – 공권력의 개입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공권력 없이 만들어진 계(系, system)에 대해 막강한 힘이 자리잡을 때의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박정근 사건의 공권력 개입은 할 일 없이 껍데기만 남은 국가기관의 (힘좋은!) 잉여들이 멀쩡한 개인을 만신창이로 만든 짓거리다. 이제 누가 트위터를 자유로운 공간이라 생각 하겠는가? '이것이 혹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국가는 승리하며 당신의 전두엽에 필터링 장착에 성공한 것이다. 악의적인 자료의 선별과 이를 통한 한 개인의 비극, 커뮤니티의 파괴는 비단 연예부 기자들만의 전유물만이 아닌 것이다.

개인의 자조 섞인 어투와, 불행과 비참 속에서도 한 끼의 치맥으로 웃을 수 있는 이들이 말하는 '잉여'가 국가의 영역으로 도약한다. 그들은 치맥에 만족해하지 않는다. "이 블로그랑 동영상 뭐야"라는 이명박의 한마디, "이 트위터 뭐야"라는 보안수사대의 한 마디에 먹잇감을 찾아 인터넷을 조진 국가대리인들의 액션은 크고 볼썽사납다. 국무총리실 사건을 보고 있으면 보면 조폭이랑 다를 것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조폭이다. 공무원 나부랭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박정근 사건에서의 검찰 기소 내용을 볼까? "주체탑은 오늘도 모에하시며 일용할 감자를 배급하시매 여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만세!"이게 북한 찬양 트윗이라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당신은 고무되는가? 농담 같지 않은 세상, 농담도 못하는 세상, 우리 모두 화염병을 들고 청와대를 저격하자... 아, 농담이다. 진짜.







※ 월간잉여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잉여논단의 글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