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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또 하나의 가족, 삼성(글_김짱구)





삼성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이번 호의 주제가 '가족'인데 '또 하나의 가족'인 삼성이 빠지면 이 회장님이 얼마나 섭해 하시겠나. 혹시 아나, 삼성에서 월간잉여에 광고라도 하나 줄지...


그러나 잉집장에겐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듯싶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삼성에게는 많이 불편한 얘기다.


필자는 언론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부 수습기자다. 수습기자라기 보단 하릴없이 경찰서와 길거리를 방황하는 수습잉여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그날도 필자는 수습잉여답게 기자실의 방바닥에 붙어 선배 몰래 잠을 자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다른 회사의 또 다른 수습잉여에게 신라호텔로 와보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이것은 4월 3일부터 8일까지, 필자가 5일간 경험한 현장의 기록이다.

4월 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1446호실에는 삼성 협력업체 채권단 16인이 농성 중이었다. 그들은 객실 창문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전단지를 살포했다. 전단지에는 "삼성 경영진은 중소기업과 동반성장의 진정성이 있는가?!"라고 적혀 있었다. 신라호텔 직원들은 뿌려진 전단지를 재빠르게 수거해 갔다.
신라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삼성과 호텔의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역시 '또 하나의 가족'답게 수습잉여들을 정중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대해줬다. 얼마나 가족 같은지 전화를 하면 따라붙어 무슨 내용인지 옆에서 들어줬고, 조금이라도 객실에 접근하려고 하면 금방 또 따라붙었다. 내 옆에 꼭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어릴 적 우리 할머니 같았다.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다니 정말 가족 같은 기업이다ㅠㅠ)

농성을 하는 16인은 삼성전자의 냉장고 생산에 부품을 공급하는 ‘엔텍’이라는 회사의 채권단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신라호텔 1446호까지 들어온 사연은 대충 이랬다. 삼성은 엔텍에 "야 너네 우리한테 납품하는 걸로 먹고사는데 노후설비랑 필요 없는 인력 좀 보낼게. 우리 구조조정용으로 활용 좀..." 삼성은 부품 기술도 빼돌린 후 납품을 조금씩 줄였다. 엔텍은 결국 2003년 10월에 부도가 났다. 채권단은 삼성에 납품대금을 달라는 투쟁을 시작했다.


삼성은 엔텍의 감사에게 4억5000만원을 주고는 "이거 드시고 너네 회사 여태순 대표이사 명의로 합의서 좀..."이라고 했다고. 그러나 법원은 필적 감정을 통해 '합의서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채권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채권단은 2010년 10월부터 삼성본사 앞에서 농성하다 마지막 방법으로 신라호텔 1446호에 들어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납품대금은 10억, 피해 및 보상금은 200억 남짓이었다.(물론 삼성 측은 이를 부인한다)

객실에서 농성 중인 채권단은 인터넷으로 1446호를 예약한 후 4월 2일, 2명이 먼저 들어왔고 3일 오전 8시에 나머지 14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3~4일 정도를 버틸 수 있도록 컵라면, 햇반, 김치 등을 가지고 왔다. 컵라면과 햇반, 김치. 아~우리 잉여들에게 얼마나 친숙한 물품들인가!!! 그러나 우리 잉여들과 달리 그들은 목숨을 건 각오로 그것들을 준비했다. 

다음날인 4일 오후 5시 20분. 엔텍의 여태순 대표이사는 채권단에게 음식을 반입하겠다고 말했다. 신라호텔은 난색을 표했지만 경찰이 호텔 측을 설득해 결국 호텔 측에서 제공한 빵도 같이 갖고 가기로 했다. 경찰관이 14층 복도에 올라가 거기 있는 호텔측(삼성측)의 경비들을 철수시켰다. 너네가 자꾸 여기 있으면 저 사람들이 무서워 문을 안연다며...그런데 경비 두 사람은 안 가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경찰관이 다시 이 둘에게 멀리 물러서라고 요구했고, 이들은 알겠다고 하면서 가는 척하더니 다시 돌아왔다. 여 대표가 재차 물러서줄 것을 요구하는 그 때 농성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2명의 경비원은 갑자기 달라붙었다.


그리고 다른 방문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20~30명 정도가 쏟아져 나오며 어디에선가 "행동개시, 밀어붙여, 문열어"라는 소리가 나왔다.  예전에 매트릭스인가 보면 똑같이 생긴 스미스들이 막 몰려나오는 그거 있지 않나? 그거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이런 거...




여 대표와 경찰이 중간에 낀 샌드위치가 돼 문이 열린 상태에서 어디에선가 소화기가 머리 위쪽으로 날아오더니 문이 못 닫히도록 했다. 그리고 빠루(못을 빼거나 지레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장도리)가 머리 위로 날아와 문틈에 껴졌다. 여 대표가 빠루를 잡고 복도 쪽으로 당기니까 누군가 "이 새끼 때문에 못 열었어"라고 하더니 여대표의 허리를 찼고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밟힌 여 대표는 정신을 잃으며 경비원들이 주춤하는 사이 농성단은 문을 닫았다. 여대표는 119 구조대에 의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아, 이건 내가 본 게 아니라 여 대표가 진술한 상황이다. 물론 호텔 측은 이를 부인했고 CCTV를 보여 달란 요청에는 “CCTV 공개는 경찰의 요청이 있든지 공식적인 절차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냥 공개한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뭐 결국 채권단은 5일 만에 점거 농성을 풀었다.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에서 자진해서 해산하면 창구를 마련해주겠다는 당근과 최후통첩이라는 채찍을 내민 것이다. 삼성 측은 엔텍사의 경영난에 책임이 없다는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지만 글쎄...16명의 채권단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할 말이 많았으면 호텔 객실까지 점령해 저러지 않았을 까 싶다. 기자들을 계속 감시하고 무언가를 숨기려 하는 쪽보단 목숨 걸고 투쟁하는 쪽의 말이 더 믿을 만하지 않나. 

워낙 삼성을 가족같이 대하는 언론들이 많아 이 사건이 크게 보도나간 언론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너무 기자들 욕하진 말자. 현장에서 송고한 기사들이 데스크에서 잘리는데 울분을 토해 낸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아, 호텔 측에서 1446호 객실의 유리창, 카페트를 새로 하고 도배까지 해야 한다며 2000만원의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성단은 방충망 뜯어낸 것 외에 아무 것도 만지지 않았으며 냉장고에 있는 음료 하나 손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호텔 측은 다른 객실을 비워둬 4000만원의 피해를 봤다며 업무방해와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를 생각하고 있단 얘기를 하던데...거 뭐 그래도 한 때는 '상생 협력하던' 가족이 그랬는데 좀 봐주지 그거 참.









※잉여논단의 글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자님들하! 데스크에서 잘린 잉여기사 월간잉여에 투척해주심이 어떠신지요!

※ 월간잉여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