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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40대가 본 잉여_글 이상구


잉여라는 단어만으로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다.
잉여의 사전적 의미는 ‘다 쓰고 난 나머지’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잉여라고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잉여’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버림받았다고 느껴지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존재 규정이다. 돈 없고, 희망조차 없는 현실, 힘들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은 안 되고, 학교 다니는 내내 밤을 새우며 아르바이트를 하였지만 학자금 융자는 인생의 출발을 하기 전부터 발목을 잡고 있다. 따라서, ‘잉여’는 경제적으로 소외당하고 답답하고 힘든 현실을 버텨나가야 하는 세대들이 세상에 대해 외치는 반항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잉여의 존재 규정을 더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다 쓰고 난 나머지’가 아니고, “한 번도 쓰여 지지도 않은 사람들이거나, 쓰여 질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이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스스로를 잉여로 느끼게 하고,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을 변명하기 위한 자아방어기제가 ‘잉여’라는 집단으로서의 개념을 창조한 것이다. 즉, 스스로를 잉여라고 느끼는 당사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고, 이 시대를 사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마치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나, 재혼한 부모들이 각자 데려온 아이들인 것처럼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이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문제라고 의심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노량진에 가면 공무원 시험, 교사 임용고시, 공기업과 대기업의 취직을 준비하는 학원에 몰려 있는 그 인구는 70만 명에 육박한다. 신림동에 가면 또 그 숫자 만큼의 젊은이들이 생존을 위해 쪽방 수준의 고시원에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수백 만 명의 젊은 세대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인데,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 중의 하나인 자동차와 조선업 종사자의 평균 연령이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저임금 노동과 암담한 미래밖에 보장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고 있다면, 청년 실업은 이미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경제의 활력이 사라지고 있는 산업구조의 문제이고, 통계청의 발표대로 ‘그냥 쉬었다’로 분류되는 사람이 200만 명이나 된다면, 그 것은 더 이상 이들 개인의 잘못이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 체제와 사회 구조 전체의 문제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잉여'는 주로 ’잉여 생산물’을 지칭한다. 매일 매일 먹고 사는데 쓰고도 남는 ‘잉여 산물’이 있어야 추가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이 가능해 지기 때문에 ‘잉여’는 경제 성장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문화와 창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히 젊은이 시절에는 삶의 여유를 가지고 약간은 현실과 생업에서 떨어져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이 치열하고 날카로울수록 이들이 만들어 나갈 다음 세대는 더 희망차고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잉여의 시기에 사랑을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때만큼 각종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시기가 없기도 하지만, 이때 치열하게 사랑한 기억이 앞으로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 전체를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을 만끽하기 위해 보내는 밤이 아니고, 입시 준비를 위해 학원에서의 보내는 밤으로 청년의 기억이 채워져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이 메일과 SNS 매체를 꼼꼼히 채워 나가며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토익과 토플의 점수에 매달리면서 젊은 시기를 보낸다면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얼마나 살벌한 곳이 될까?


우리 젊은이들이 삶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잉여의 시간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시기에 인생은 살 만한 곳이라고 느껴야 이후로도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면, 우리 사회는 당연히 그 것을 제공하여야 한다.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무상 등록금이 제도적으로 보편화되어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이 부모의 부담이나 사회적인 강요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일 수 있어야 한다. 중부 유럽의 여러 나라들 같이 대학생들에게 지하철과 버스 요금을 지원하고, 대학 입학허가증이 등록금 납부 고지서의 다른 말이 아니라 대학이 자리 잡은 도시에서 마음대로 방을 골라잡을 수 있고 매달 월세를 지원받는 허가증이 되어야 한다. 졸업을 하기도 전에 기업들이 몰려와서 자신의 회사로 졸업생들이 오도록 모집하는 고용 창출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보육, 교육, 의료, 주거, 노후소득보장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이 모두 국가에서 보장되는 북유럽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 나라들은 국민소득 1만불 수준일 때, 그리고 늦어도 국민소득 2만불에 도달할 때 이미 그러한 사회경제 구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기성세대들의 말은 자신의 무책임함과 무능력을 변명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책임감, 우리의 대안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잉여’ 라는 집단적 체감 현상을 만든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누렸던 만큼의 여유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인생이 채 출발하기도 전에 무한 생존 경쟁의 장으로 젊은이들을 몰아넣어, 분노와 포기로 생지옥 같이 느껴지는 사회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사실 우리사회가 왜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 밖에 없는데, 어느 사이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살아남기 어려운 곳 중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주위에 물어 보아도, 재벌과 대기업 때문이거나, IMF 체재와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는 것은 많은데 우리 사회의 문제 전체를 설명하지 못하고, 또 구체적인 해결방안이나 대안은 찾을 수가 없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고, 우는 아이에게 젓을 준다는 속담대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 대한민국의 문제를 분석하였다. 이들이 모여 씽크탱크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만들었다. 현실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해결 방안을 찾아보았고 결론은 “복지국가”였다. 복지국가 담론을 대 놓고 떠든지 2년 만에 온통 복지의 쓰나미와 산사태가 났다. 새누리당도 복지국가를 정강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민주통합당도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명기하였다. 통합진보당은 원조복지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리 ‘잉여’들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우리는 앞으로 “월간 잉여”를 통해 잉여들에게 우리가 찾은 구체적인 대안을 들려주고 싶다. 반값 등록금을 진짜 실현시키는 방법은 무엇인지, 청년 실업의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고 싶다. 똑 같이 공부했는데, 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입사할 때부터 시작된 차별이 유리 천정을 느끼며 끝을 내어야 하는지, 죽도록 일해도 노후는 왜 그렇게 불안한지도 이야기 하고 싶다. 그리고, 잉여들의 입장에서 치열한 비판도 받고 싶다.
다만, 비난과 비판, 그리고 대안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에 하나의 사실은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잉여짓이 ‘쓸모없는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희망과 활력을 주는 창조적인 활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밀려나서 소외되고 강요된 잉여가 아니라,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선택하고 축복받은 잉여, 희망과 행복의 다른 이름인  “잉여”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러한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 월간잉여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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