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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잉각색

수강 신청 성공하셨습니까 (보마)

대학교 개강 전이면 으레 치르는 홍역같은 행사가 있다. 
그 이름도 딱딱한 '수강신청'.
비싼 돈 내고 듣고 싶은 수업도 못 듣냐!고 항변하기엔 이 현실은 너무도 당연하단듯 우리에게 주어져왔다.
이제 반항하기도 귀찮아진, 어쩔 수 없는 전쟁이다.


대학에 가면 원하는 수업을 골라서 시간표를 짠다고 했다.
주어진 시간표에 앉은 자리에서 책만 바꿔 펴면 다른 선생님이 와서 수업을 해주었던 중고등학교 시절과는 엄청난 차이다.
이 얼마나 쿨한 일인가. '하고 싶은 공부를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다니!'
'로망의 캠퍼스 라이프!'



미안하지만 개뿔이다. 이런 개뿔은 고등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도록 선생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이건 4학년이라는 사악하고 자랑스럽지 않은 훈장을 달게 되는 동안 매년, 아니 매 학기 느낀 것이니 꽤 믿을만 한 결론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진법을 썼던가
대학의 수강신청은 절대 쿨하지 않고, 쿨하지 않고도 미안해하지도 않는 그런 나쁜놈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이 아주 틀린 말을 하신 건 아니다.하나만 알려주시고 둘은 감추셨을 뿐이다. 듣고 싶은 수업을 고를 수는 있지만
좁쌀만한 수강정원에는 '설마 나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다.
 없어,
없다고요.


방학 때 본의 아니게 즐기던 잉여 라이프를 청산하고 잘 짜여진 시간표를 만들어 새학기를 시작하고 싶었던 본잉은 아주 큰 절망을 맛보았다.
휴학생으로서의 자유를 조금이나마 더 즐기려다 그만 복학기간을 놓치고 만 것.
금요일까지 했어야 하는 걸 그 다음주 월요일에 해버렸다.
문제는 이런 '2차 복학생'에겐 수강신청 기회가 아주 늦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학년 학생들이 하는 날엔 로그인도 못했고(수강신청 대상이 아니라는 차가운 그의 메시지… 부숴버릴 거야.), 전체 학년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남은 수업을 뜯어먹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불쌍한 사람들 모아서 잔치를 벌이는 '2차 복학생 수강신청'날 호기롭게 수강신청 페이지에 접속한나에게 떠있는 숫자는
0,
1,
0,
1.



아니, 우리가 언제부터 이진법을 썼던가? 애꿎은 검지 손가락만 고생하며 새로고침을 눌러보아도 새로 고쳐지지가 않는 0,
0,
0,
0.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모든 숫자가 사라져버렸나. 왜 0이라고밖에 말을 못 하니. 숫자가 있는데 왜 쓰지를 못 하니.


페이스북에 보란 듯이 올라오는 친구들의 시간표는 초등학교의  조회시간만큼이나 빽빽했지만, 나의 그것은 허름하고 초라했다.
혹자는 모눈종이같다 하였고, 나는 그에게 내 시간표를 바둑판 삼아 오목이나 두자고 받아 쳤다. 나는 시간표마저 잉여롭구나.
이미 낮았던 자존감의 바닥을 찍었다.
방학은 잉여로웠으나 다가올 학기는 창대하리라는 꿈이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렸다.
아, 아,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우리네 대학이 학문의 전당과 거리가 멀어진 것은 오래된 사실이나, 그래도 학생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이렇게 큰 시련이 주어져서야 되나 싶다.
억울하고 슬프고 무력하다.



’이 과목만 신청할 수 있으면 진짜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는데!’란 터무니없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나는 갈구한다.
저 수강 가능인원이 0인 과목을.
아무리 두드려도 들어갈 수 없는 강의실을.





(feat.매트릭스)





경쟁-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이 도처에 깔려있다.
내가 나로 태어난 것도 경쟁의 결과다. 나를 만든 생명의 씨앗은 가장 빨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밥상머리에서 마지막 남은 계란말이를 누가 먹을지도 경쟁이고, 맘에 드는 옷이 품절되기 전에 주문하는 것도 경쟁이고, 듣고 싶은 수업을 누가 듣는지도 경쟁이다.
계란말이가 화수분이고 내가 주문할 옷이 물류창고에 쌓여있고, 수강 가능 인원이 많으면 문제가 없을 텐데 계란말이는 한 뼘만하고 꼭 내일 주문하려던 옷은 오늘 품절되고 수강 가능 인원은 늘 부족하다.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본잉이 노르웨이에서 아주 잠시 수학할 당시의 수강신청은 이러지 않았다. 서버시간을 보며 정각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듣고 싶은 과목을 신청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는 크고 학생은 적고 교수는 상대적으로 많은 그 나라 상황에선 여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은 코-리아. 내가 사는 곳은 인구밀도마저 관광상품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서울이 아닌가.




어떻게든 되겠지 ㅅㅂ
그렇다고 해도 노여움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분노에 이글이글 타오르며 ‘진짜 휴학할까?’고민했을 당신, 이 놈의 학교는 대체 나에게 해주는 게 뭐냐고 푸념했을 당신. 이 글을 읽을 때면 이미 완성된 시간표에 맞춰 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을까 싶다. 수강신청 기간과 수강변경 기간이면 매번 잊지도 않고 모두들 신음소리를 내대지만 결국 학기가 시작하고 일주일쯤 지나버리면 모두 조용히 학교에 등교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걱정하고 징징대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ppt를 뽑아 강의실로 향하고 수업교재를 사러 서점엘 오는가?
어떻게 된 일일까. 


오늘 아침엔 상당히 괴로웠으나 사실 수강신청은 어떻게든 해결될 문제라는 걸 은근히 알고 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도 하고, 교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도 하니까.
어쩌면 년 2회의 짜증 대폭발은 대학생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 마디 자기 위로를 해본다. 


“어머나 시간표가 티끌도 하나 없이 잘 정리되어 있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현재 0학점을 신청하는데 성공한 자랑스런 복학생이다.






 






(격)월간잉여 1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