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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잉여'의 생활 (여수잉여)

대한민국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산다.

5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산다. 그중에 잉여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지방에 사는 잉여는 얼마나 될까?

문득 월간잉여를 읽으면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월간잉여에 나오는 잉여분들,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는 잉여분들의 생활상을 나타낸 기고문들을 보며 눈물겹게 살면서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이 나온다고 느꼈다. 대체로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서울-경기도에 거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목표는 대학전공을 살리는 직군 혹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 혹은 꿈을 이루는 것. 특징은 공부와 알바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넉넉지 않은 지갑사정 때문에 좋지 못한 주거환경에 머무는 것. 정도가 눈에 뜨인다.

 

나는 지방잉여다. 현재 26살이다. 얼마 전 엑스포를 열었던 여수에 산다. 대학은 중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2년제 대학을 다녔고, 1년의 일본생활과 2년 조금 못되는 군대생활 후 복학신청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조선소에 취직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니던 조선소를 그만둔 뒤 놀고 있다.

 

내가 한일은 생산직+서비스업의 애환을 고루고루 섞은 것이었다. 생산직 업무를 보조하면서 서비스업인 민원처리를 해주어야했다. 6시 칼퇴근은 보장됐지만 주말도 일을 해야했다. 물론 그에 따른 돈은 받았고, 당시 사회초년생이던 내게는 그것은 완벽히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기준에 부합되지 못했다. 생각해보았다. 내 원래 꿈과도 다르고, 심지어 자신의 시간도 없이 집(기숙사)과 조선소의 반복 뿐인 인생이 내가 바라던 것인가 하고 말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환경으로 옮겨 가보자고 생각했다. 조금 막연하고 애매모호한 목표이긴 했다.

 

일단 적금을 넣고, 보너스를 모으고, 퇴직금을 모았다. 얼추 천오백만원이 나왔다. 어떤 이에게는 작고, 어떤 이에게는 클 수 있는 그런 돈이었다. 동시에 내 앞으로의 목표를 위한 군자금이었다. 그렇게 잉여생활을 시작했다. 우선 잘할 수 있는 것을 좀더 잘하기 위해 일본어를 다시 배우고, 자격증을 목표로 하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돈이 없어서 못했던 것들 말이다. 그리고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 여수잉여



내 집은 (서류 떼보면 그렇게 나온다.) 여수앞바다가 보이는 그런 풍경을 앞에 두고 있다. 여수는 버스한번이면 웬만하면 가고자 맘먹는 곳 갈수 있는 곳이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5. 다만 단점이라면 근처에 편의점이 없고, 슈퍼만 있다는 점.(신데렐라도 아니고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편의점도 버스정류장 옆에 있다. 걸어서 5. 수도권 사는 분들이 상상하기 힘들만큼 싸다. 그렇게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내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모두 나보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취업을 준비 중이었다. 일어과를 졸업예정이지만, 취업할 곳이 없어 결국 많고 또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러 광주로 올라갔거나, L대기업의 생산직에 취직했으나, 좀더 좋은 평생직장을 잡기 위해 내려왔다면서 1년째 가끔 보면 노는 건지 준비하는 건지.. 싶은 조금 한심한 잉여와 다니던 4년제를 휴학하고 취업을 위해 또 다른 대기업의 IT교육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

 

 

지방에서 유일하게 높은 연봉과 안정성을 자랑하는 건 역시 대기업의 생산직 혹은 본사 파견직이다. 그런데 그런 직종들마저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에서 직장을 찾아 내려오는 취준생들과 피터지게 자리를 두고 경쟁중이다. .. 노동의 글로벌화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 근처에 있는 것 같다. 실례로 친구가 갔던 대기업 면접장에는 절반이 서울사람들로 보였다고 한다. 점점 지방잉여들이 서울잉여에게 밀려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이라면 서울 사람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지방으로 일자리를 찾아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노동환경이 각박한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나는 놀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내 친구들 중에서 제일 여유롭게 잉여짓을 하고 있긴 하다. 다만, 내가 잊지 않고 있는 것은 2013년안에 그동안 못했던 것을 마치고 나면(예를 들자면.. 천추의 한이 될지도 몰라서 시작한 피부치료와 다이어트 그리고 일본어 자격증) 좀더 넓은 세상을 정확히 말하자면 좀 더 좋은 노동환경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물론 행선지의 기본 조건은 내가 배운 일본어 혹은 영어를 쓸 수 있는 곳.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더 적은 나라. 한국보다 최저 시급이 더 높은 나라. 읽고 있는 여러분도 알랑가 몰라.

 

부모님은 탐탁지 않아 하신다. 늘 말하신다.

어딜 가든 다 똑같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국가 혹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와 규범 그리고 노동환경은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고 싶다.

떠나고 싶다.











(격)월간잉여 13호에 실린 글입니다.